나와 닮은 책 <한 달의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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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닮은 책 <한 달의 길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는 기분이란

쉬고 싶었던 쉼

한 달의 시간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다. 만약 일을 하고 있다면 집, 회사가 주로 반복될 테지만 백수에게 한 달은 외출하지 않는 이상 무료하면서도 심심한 날이 반복된다. 요일 개념을 잊기도 한다. ‘한 달의 길이’ 책은 일을 그만두고 한 달의 시간 동안 보낸 일들을 기록했다. 너무 사소해서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금세 잊었을 법한 일화와 생각들을. 매년 느낀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도대체 그 시간 동안 뭘 했을까. 기억도 없는 내 하루하루들이 어떻게 지나갔을까. 이 책에서는 특별한 날들보다 사소한 일이 더 많다. 그게 라면 먹는 일이든, 낮잠이든.

일을 그만두고 며칠은 좋았다. 일 하면서 쉬고 싶었던 쉼을 충분히 쉴 수 있으니까. 쉬고 쉬어도 계속 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쉼도 적당한 선을 넘어서는 순간 괴로워진다. 무료해지는 일상이 많아지면서 내 삶이 너무 형편없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무언가 하지 않는 이 시간이 무서워진다. 쉬면 안 될 것 같아. ‘한 달의 길이’ 구달 작가 또한 목적 없는 생활을 하고 글 한 자 적지 않은 몇 달을 보냈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신문과 뉴스를 보고 영화를 보고 반려견 행동을 관찰하기도 했다.

허무하게 날려 먹었다고 생각한 하루하루는 사실 꽤 바쁘게 흘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한 푼도 벌지 않았을 뿐이다. 
시간을 소비한 대가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 푼도 벌지 않는 대가, 생각해보면 나도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밀린 드라마를 보거나 반려견을 안고 자는 좋아하는 시간을 즐기거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낸 게 맞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한 없이 무기력한데 정신의 일부분은 날카로워졌다. 
사소한 일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그 감정을 몸 밖으로 밀어낼 힘은 없었다.

무기력해지는 시간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내게 뭐라 하지 않아도 그 말을 들을 것을 예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쉬고 있는 이 삶도 괜찮다며 떵떵거리고 있지만 사실 나를 지키기 위한 반어 수단의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무기력하다. 마음 편한 공간에서 내 시간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그리워하게 된다. 바로 여행. 여행만큼 내 시간을 내 시간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늦잠 자고 싶으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산책하고 싶으면 산책하면 되는 그 시간. 그 시간을 자꾸만 그리워하게 된다.

때로는 유유히, 때로는 쏜살같이 흐른 시간을 수십수백 컷의 자잘한 장면으로 
치환해 기억 속에 차곡차곡 저장해 둔 덕에 4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어져 있는 거라고,
이 해와 그다음 해를 연결하는 역할을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내고 기억한 내가 주도했다면, 이룬 것 하나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 해도 4년이라는 시간은 헛되어 흐르지 않았다고.

내가 보낸 시간을 아까워한 적이 있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 낸다는 말은 믿지만 가치 있는 일보다 가치 없는 일들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항상 활발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활동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나를 이해하려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밉기만 했던 나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져 나라도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나를 이해하려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고 내가 좋아하는 일상을 보내는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항상 만나는 친구들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밥 먹고 있던 날, 뜬금없이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런 게 행복일 수 있겠구나 하는. 너무 평범해서 싫어했던 내 삶이 그런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어릴 적 이야기한다. 다른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닐 수 있는 것들에.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지금의 좋은 순간들을 잊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던 때를 싫어했다. 잠만 자는 건 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길 바래서였다. 여유가 있으면 불필요한 감정을 소비하게 되니까. 무료함을 느끼지 않으려 잠만 잤지만, 깨어나면 후회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는 것에. 지금은 마음 편하게 낮잠 잔다. 30분 자고 일어나면 개운한 상태가 된다는 걸 아니까. 이렇게 나를 이해하면서 앞으로도 시간을 보내려 한다. 훗날 이때를 생각해도 시간이 헛되이 흐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열심히 살 것이고 열심히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열심히 소소함을 즐길 것이다.

그런 책이 있다. “나도 저 생각했었는데” 하게 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누군가가 대신 표현해주면 기분 좋아진다.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위로받는 기분이랄까. 예전엔 내게 도움되는 책을 좋아했다. 마케팅, 광고 분야. 지금은 아니다. 나와 닮은 책을 찾는다. 각 나이별로 느끼는 감정이 있다. 20대 초반에는 마냥 좋고 설레었다면 중반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것처럼. 그 시간의 흐름에 맞게 필요한 책을 찾는다. 내 마음을 대신 설명해주고, 내가 더 잘 살 수 있도록 생각해주는 책. ‘한 달의 길이’는 지금의 내게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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