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어졌다, 러브리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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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리스 리뷰

사랑이 없어졌다, 러브리스 리뷰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러브리스

영화 [러브리스]도 마찬가지다. 포스터 적힌 “사랑이 사라졌다” 카피만 보고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할 정도. 영화를 보는 순간 로맨스가 아닌 사랑이 없는 한 가족, 더 나아가 러시아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임을 알게 된다.

영화감독도 러시아 거장이라 불리는 안드레이 즈비아진체프. 거장인만큼 이번 영화 [러브리스]는 22회 부산 국제영화제 초청작이며 제70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수상, 제90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다. 러시아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잔잔하면서 본질을 말하는 영화가 많다. [러브리스]에서는 어떤 본질을 전할지 기대하며 영화를 관람했다.

일 끝나고 본 영화라 피곤한 상태였는데 첫 장면이 잠을 깨웠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소복하게 눈이 쌓인 작은 연못과 쓸쓸해 보이는 거리가 영화 앞부분을 차지했다. 조금 서늘해서인지 묘하게 집중됐다. 우리나라 영화와는 다른 시작이다. 만약 한국영화였다면 사건이 발생하거나, 인물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장면으로 시작했을 텐데. [러브리스]는 시간의 흐름대로 보여준다. 사건도 영화 시작에서 바로 보여주지 않고, 제냐와 보리스, 알로샤의 성격을 조금씩 알아갈 때쯤 나온다.

쓸쓸한 거리, 쓸쓸한 아이

깃발이 흔들리는 한 건물에서 학생들이 나왔다. 학생 속에서 알로샤의 걷는 모습을 꽤 오래 보여준다. 그냥 넘겨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영화가 끝난 후면 앞 장면을 다시 떠올릴 만큼 중요하다. 알로샤는 터벅터벅 혼자 길을 걸어가며 나무 아래에 있는 끈을 주워서 걷고, 나무 위에 끈을 던져 올린다.

핸드폰만 보는 제냐는 언뜻 봐도 사랑이 넘치는 엄마가 아니다. 알로샤에게 다정다감하기보다는 귀찮은 듯 화가 나있는 듯 무심하다. 집 보러 사람들이 온다고 하며 방을 치우라고 하지만, 알로샤는 방 문을 쾅하고 닫아버린다. 이사 가기 싫다는 듯이. 저녁이 되자 알리샤 아빠인 보리스가 나온다.

제냐의 눈치를 보며 집은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데, “신경 꺼” 라며 제냐가 타박한다. 둘의 대화가 과격해지며 갑자기 알로샤를 서로 키우라고 떠넘길 뿐만 아니라, 괜히 애를 낳았다며 후회한다는 말까지 한다. 이를 다 듣고 있었던 알로샤. 아이가 받을 상처가 짐작되면서 마음이 아프다.

잔잔하지만 강렬한 여운

다음날 아침 가방을 메고 알로샤는 아파트 계단을 뛰어갔고,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화나게도 알로샤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학교 전화로 알게 되고, 2일이 지난 후였다. 서로의 연인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제냐와 보리스가 함께 있는 장면보다 서로의 연인들과 있을 때의 행복을 더 길게 보여준다. 그 달콤함 때문에 정작 챙겨야 할 알로샤를 잊은 듯하다. 제냐는 보리스에게 알로샤가 오지 않았다고 얘기하지만, 보리스는 덤덤하다.

반면 제냐는 경찰에 신고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여기서도 우리나라와 다른 점을 볼 수 있는데, 유괴나 실종 영화의 경우 우리나라 영화라면 아이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거나, 서로에게 의지하는 장면이 많은데, [러브리스]는 달랐다. 많은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알로샤를 찾아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믿을 뿐. 집에서 자는 게 아니라 각자의 연인의 집에서 자기도 한다. 아이가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정말 찾을 마음이 있는 건가 의심이 될 정도다.

알로샤를 찾는 과정도 천천히 보여준다. 조금 지루할 수 있지만, 알로샤가 어디에 있을지 걱정하며 보게 된다. 알로샤의 안타까움, 아이를 사랑하지 않지만 아빠라서 알로샤를 찾는 보리스, 걱정은 되면서도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한 제냐의 모습까지 골고루 보게 된다. 아이를 찾는 과정 속에서도 제냐와 보리스의 성향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사랑 없는 가족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잔잔함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랑이 없어졌다

제냐는 지금까지 누구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보리스를 만났을 때 실수로 아이를 가졌을 뿐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을 보리스가 망쳤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애정이 없어서 일까. 알로샤와 보리스와 있을 때는 핸드폰으로 남의 행복을 보고, 이반과 있을 때는 함께 한 순간을 찍는다. 그만큼 온도차가 느껴지는데 뭔가 익숙하다. 부모님과 있을 땐 핸드폰 하고, 친구를 만날 때는 일상 사진을 찍는 것처럼.

보리스는 만삭의 여자 친구인 미샤가 있다. 보리스 직장은 이혼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윤리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다. 이에 미샤는 보리스가 이혼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고, 보리스는 미샤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랑한다며 다독인다. 이 세상에 여자는 너 하나뿐이야 라고 말하듯이. 제냐와 보리스는 서로 자신의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며 불평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이도 한 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리스와 미샤의 관계, 제냐와 이반의 관계는 보리스와 제냐처럼 무뚝뚝해진다. 사랑이 없기에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알로샤가 원하던 것은

영화 초반에 알로샤가 창문을 멍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땐 뛰어노는 또래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난 뒤 아이들이 뛰어놀았던 그곳에서 눈썰매 타며 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이 보인다. 유일하게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알로샤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을 부러워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 수 있는 상황을 바라던 게 아니었을까?

[러브리스] 줄거리를 찾아보다가, 러시아 역사와 [러브리스] 영화를 설명한 후기를 읽었다. “푸틴 집권 후 러시아 국민이 고통받는 것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장기 집권에만 열중하고 있는 푸틴 정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우크라이나 내전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데, 어쩌면 러시아의 암울했던 때를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살았던 알로샤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다. [러브리스]는 보는 내내 쓸쓸하고 긴 여운이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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